사회현상 · 12 min read

사다리의 첫 칸이 사라진다: 신입 없는 회사의 10년 뒤 [생존법 1]

한국 청년 일자리 감소의 94%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났고 대기업 신입 공고는 43% 줄었다. 신입의 일은 회사가 돈을 대던 도제 수업이었다.

짙은 버건디 듀오톤 동판화풍 높은 길드 공방에서 여러 층을 관통하는 커다란 나무 사다리의 아래 세 칸이 톱으로 잘려 나가 하늘색 빈틈으로 표시되어 있고, 연장 가방을 멘 젊은 견습생 무리가 바닥에서 올려다보며 오르지 못하는 가운데, 사다리 옆 놋쇠 자동인형이 견습생들이 하던 청소와 분류와 필사를 조용히 하고 있으며, 꼭대기의 늙은 장인이 걱정스럽게 내려다보는 팝아트 판화

핵심 요약

  • 한국은행은 2026년 8월 지난 4년간 줄어든 청년 일자리 28만 5,000개 중 94%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났다고 분석했다. 신규 채용 중 청년 비중은 36.9%에서 29.3%로 떨어졌고, 4대 은행 신입은 3년 새 1,880명에서 1,280명이 됐다(한국은행·아시아경제, 뉴스핌).
  • 미국도 같다. AI 노출 직종의 22~25세 고용은 덜 노출된 직종보다 19% 뒤처졌지만, 30세 이상은 오히려 6~12% 늘었다. AI는 교과서로 배우는 지식을 대체하고 경험으로 쌓는 지식을 보완한다(스탠퍼드, 댈러스 연준).
  • 이 글의 핵심 통찰: 신입의 일은 원래 생산이 아니라 회사가 돈을 대던 도제 수업이었다. AI가 그 수업의 명분을 없앴다. 지금 신입을 안 뽑는 회사는 10년 뒤 숙련자를 어디서 구할지 답이 없다.

번외편 「AI 시대, 일의 생존법」 3회 연재 · 1편 사다리의 첫 칸이 사라진다 · 2편 AI가 못 가져가는 일의 세 가지 공통점 · 3편 마흔 이후의 재설계

PRISM AGENDA는 그동안 인간의 일, 2030년 직업 지도, AI 감원의 이름 바꾸기를 따로 다뤘다. 이번 번외편은 그 조각들을 한 질문으로 모은다. AI 시대에 일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1편은 가장 먼저 밀려나는 자리, 신입에서 시작한다. 실업률은 오르지 않았는데 청년 일자리는 줄었다. 그 모순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무슨 일이 있었나: 한국과 미국의 숫자

한국. 한국은행은 2026년 8월 18일 이슈노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제목이 “청년고용 위축, AI 탓인가?“다.

지표 수치 출처
지난 4년(2022.7~2026.6) 청년 일자리 감소 28만 5,000개, 그중 94%(26만 8,000개)가 AI 고노출 업종 한국은행
신규 채용 중 청년 비중 20142019년 평균 36.9% → 20242026년 29.3% 한국은행
대졸 청년 실업률 4년제 7.0%, 전문대 이하 5.4% (고학력이 더 높음) 한국은행
대기업 정규직 신입 공고 (2025년 1~11월) 전년 대비 43% 감소 KLI 노동리뷰
4대 은행 신규 채용 2023년 1,880명 → 2025년 1,280명 뉴스핌
통신·IT 신입 감축 SK텔레콤 50.5%, LG유플러스 65.7%, 삼성SDS 33.0% 뉴스핌
네이버·카카오 20대 직원 비율 21.3%→17.0%, 25.5%→15.7% 뉴스핌

한국은행의 진단은 이렇다. 생성형 AI가 “대졸자들이 주로 수행하는 인지적·분석적 업무를 우선적으로 대체”하기 시작했고, 기존 직원의 고용은 유지하면서 신규 채용을 줄이는 한국 노동시장의 관행이 충격을 청년층에 집중시켰다. 고학력일수록 실업률이 높다는 것이 그 증거다. 대졸자가 하던 일이 AI가 잘하는 일이었다.

미국. 스탠퍼드 디지털경제연구소의 급여 데이터 분석은 같은 그림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 준다(스탠퍼드). AI 노출 직종의 2225세 고용은 덜 노출된 직종보다 19% 뒤처졌다. 그런데 같은 직종의 30세 이상 고용은 6~12% 늘었다(TIME).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2225세 고용은 정점 대비 약 20% 줄었지만 30세 이상은 계속 늘었다.

같은 일자리에서 젊은 사람은 밀리고 경험 있는 사람은 늘어난다. 이것이 이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사실이다.

왜 중요한가: 신입의 일은 도제 수업이었다

포춘의 9월 25일 칼럼은 이 현상에 이름을 붙였다. 신입 일자리는 처음부터 숨겨진 도제 수업이었다(Fortune). 회사는 신입에게 일부러 비효율적인 일을 시켰다. 초벌 보고서, 회의록 정리, 단순 코드, 데이터 입력. 그 일 자체는 돈이 안 됐다. 회사가 손해를 보며 그 일을 시킨 이유는 그 과정을 거친 사람이 3년 뒤 숙련자가 되기 때문이었다. 신입의 월급은 임금이 아니라 교육비였다.

AI가 그 교육비의 명분을 없앴다. 초벌 보고서와 단순 코드를 AI가 더 빨리 더 싸게 하니, 회사는 “그 일을 시키려고 사람을 뽑을 이유”를 잃었다. 한국은행이 짚은 “기업 내부교육 약화”와 “경력사다리 단절”이 정확히 이것이다. 회사는 신입을 자르지 않았다. 신입을 뽑을 이유를 잃었을 뿐이다.

댈러스 연준의 임금 분석은 이 논리를 숫자로 뒷받침한다(Dallas Fed). 205개 직종의 임금을 AI 노출도와 경험 프리미엄(숙련자와 신입의 임금 차이)으로 나눠 보니, 경험 프리미엄이 높은 직종은 AI 노출이 높을수록 임금이 올랐고, 낮은 직종은 AI 노출이 높을수록 임금이 내렸다. 연준의 해석은 AI가 “교과서로 배우는 지식”은 대체하고 “경험으로 쌓는 암묵지”는 보완한다는 것이다. 신입은 교과서 지식만 갖고 온다. 그래서 대체된다. 그리고 암묵지는 신입 시절의 그 비효율적인 일을 거쳐야만 쌓인다.

10년 뒤: 숙련자는 어디서 오는가

여기서 개인의 문제가 사회의 문제가 된다. 오늘 신입을 뽑지 않은 회사는 10년 뒤 숙련자를 어디서 구하는가.

시점 회사의 선택 결과
2024~2026 신입 채용 축소, AI로 대체 인건비 절감, 단기 이익
2028~2030 중간급 부족 시작 경력직 쟁탈, 임금 상승
2032~2036 숙련자 세대 공백 AI 결과물을 검증할 사람이 없음

뉴스핌이 인용한 전문가는 이것을 세대 부담으로 봤다. 청년이 경력을 쌓지 못하면 “3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의 중간 세대가 은퇴한 이들과 직장을 갖지 못한 청년을 책임지는 구조”가 된다(뉴스핌).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인구 구조의 문제다.

더 깊은 문제가 있다. 인지적 항복 글에서 AI에 생각을 맡기면 배움이 사라진다고 썼다. 회사 차원에서는 이것이 검증 능력의 소멸로 나타난다. AI가 만든 보고서와 코드를 검토하려면 그것을 직접 만들어 본 사람이 필요하다. 신입 시절에 직접 만들어 본 적 없는 사람은 AI의 결과물이 맞는지 판단할 근거가 없다. 10년 뒤 회사는 AI를 많이 쓰지만 그 결과를 아무도 검증하지 못하는 상태가 될 수 있다.

일부 회사는 반대로 간다. IBM은 2026년 초 신입 채용을 세 배로 늘리되 역할을 바꿨다고 알려졌다. 정형 코드를 쓰는 대신 AI가 만든 코드를 검사하고, 여러 AI 구현을 비교 평가하고, 고객의 요구를 해석하는 일이다(Managed Code). 도제 수업을 없애는 대신 교과 과정을 바꾼 것이다.

인간에게 무엇이 달라지는가

첫 직장의 의미가 바뀐다. 신입에게 첫 직장은 월급이 아니라 암묵지를 얻는 유일한 경로였다. 그 경로가 좁아지면 대학 졸업장과 숙련자 사이의 다리가 끊긴다. 학력이 높을수록 실업률이 높다는 한국은행 수치는 그 다리가 이미 흔들린다는 뜻이다.

신입은 “생산”이 아니라 “검증”으로 시작해야 한다. IBM의 실험이 방향을 보여 준다. AI가 초벌을 만드는 시대에 신입의 첫 일은 초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AI의 초벌을 검사하는 것이다. 이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만들어 본 적 없는 것을 검사하려면 만드는 과정을 다른 방식으로 배워야 한다. 2편에서 그 방식을 다룬다.

회사는 신입 채용을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다시 계산해야 한다. 포춘 칼럼의 결론이다. 신입을 없앤 비용 절감은 실재하지만, 10년 뒤 숙련자 부족의 비용은 장부에 없다. 한국처럼 기존 직원은 지키고 신입만 줄이는 시장에서 이 계산은 더 왜곡된다.

정책의 표적이 실업률에서 채용률로 옮겨야 한다. 실업률은 오르지 않는다. 대체는 해고가 아니라 채용 부재로 오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AGI 글에서 썼듯, 이 변화는 기존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신입 채용률, 첫 직장까지의 기간, 20대 직원 비율이 새 지표가 되어야 한다.

반론과 불확실성

첫째, AI만의 탓이 아니다. 포춘 칼럼의 필자는 채용 공고 감소가 2022년 3월 금리 인상과 함께 시작됐고, 이는 챗GPT보다 8개월 앞선다고 지적한다. AI 노출 산업이 금리에 민감한 금융·전문서비스와 겹친다. 한국은행도 팬데믹 과잉채용의 정상화, 재택근무, 경력직 선호 관행을 함께 꼽았다.

둘째, 스탠퍼드 데이터는 상관관계다. 연구진 스스로 “가설과 일관된다”고 했지 인과를 확정하지 않았다.

셋째, 30세 이상 고용이 늘었다는 것이 영원한 안전을 뜻하지 않는다. 지금 AI가 대체하는 것이 교과서 지식이라면, 다음 세대 AI는 암묵지의 일부를 대체할 수 있다. 3편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

넷째, 2028~2036년의 표는 추정이다. 회사들이 IBM처럼 방향을 바꾸면 공백은 줄어든다.

PRISM AGENDA의 시각

나는 이 문제를 “청년이 불쌍하다”로 읽지 않는다. 그것은 맞는 말이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내가 읽는 것은 회사가 자기 미래를 팔아 현재를 사고 있다는 것이다. 신입을 뽑지 않아 절감한 돈은 이번 분기 장부에 찍히고, 10년 뒤 숙련자가 없어 치를 비용은 어느 장부에도 없다. 장부에 없는 비용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개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첫 칸이 사라진 사다리를 원망하는 대신, 첫 칸이 하던 일을 다른 데서 하라. 신입의 일이 도제 수업이었다면 그 수업은 회사 밖에서도 가능하다. 직접 만들어 보고, 틀려 보고, 고쳐 보는 것. AI에게 시키기 전에 한 번은 손으로 하는 것. 이것이 암묵지를 쌓는 유일한 방법이고,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암묵지다. 회사가 교육비를 대 주지 않는 시대에 교육비는 자기가 댄다. 불공평하지만, 그것이 첫 칸 없는 사다리를 오르는 방법이다.

다음 편에서는 그 암묵지가 실제로 어떤 일에 남아 있는지, AI가 못 가져가는 일의 세 가지 공통점을 데이터로 찾는다.

자주 묻는 질문

AI 때문에 신입 채용이 줄었다는 근거가 있나? 한국은행은 2026년 8월 이슈노트에서 지난 4년간 줄어든 청년 일자리 28만 5,000개의 94%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스탠퍼드 연구는 AI 노출 직종의 22~25세 고용이 덜 노출된 직종보다 19% 뒤처졌다고 보고했다. 다만 금리 인상과 팬데믹 과잉채용 정상화도 함께 작용했으며, 두 연구 모두 상관관계이지 인과관계의 확정은 아니다.

경력자는 왜 AI에 덜 밀리나? 댈러스 연준의 임금 분석에 따르면 AI는 교과서로 배우는 정형 지식은 대체하고 경험으로 쌓는 암묵지는 보완한다. 경험 프리미엄이 높은 직종은 AI 노출이 높을수록 오히려 임금이 올랐다. 스탠퍼드 데이터에서도 AI 노출 직종의 30세 이상 고용은 6~12% 늘었다. 다만 다음 세대 AI가 암묵지의 일부를 대체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신입 채용 감소가 왜 사회 문제인가? 신입의 일은 회사가 비용을 대는 도제 수업이었고, 그것을 거쳐야 숙련자가 된다. 지금 신입을 뽑지 않으면 10년 뒤 AI의 결과물을 검증할 숙련자가 없어진다. 또 경력을 쌓지 못한 청년을 중간 세대가 부양하는 구조가 되어 인구 구조 문제로 번진다. IBM처럼 신입의 역할을 “AI 결과물 검증”으로 바꿔 채용을 늘리는 대안이 나오고 있다.

다음 편

  • 2편 「AI가 못 가져가는 일의 세 가지 공통점」: 물리, 관계, 책임. 데이터가 말하는 남는 일의 조건.
  • 3편 「마흔 이후의 재설계」: 경험을 AI의 지휘권으로 바꾸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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